헌책방 서형오
내가 단골로 가는
헌책방 주인은
눈매가 선해
선관(仙官)같은 양반
그가 거느리는 식솔들은
한 권에 단돈 천 원
옹기가 볼록하게 된장을 기르듯
시간이 뱃속에서 키워 온 책들이었네
색은 바래고
거죽은 손때가 묻어
옛 신선의 물건 같은데
나는 오래 묵은 맛에 끌려
신발이 자꾸 닳았네
빨아 갠 속옷들같이
속장이 정갈한 이것은
어떤 강퍅한 이가
때 타는 일을 근심하며
한 장 한 장 등을 밀었겠지
깻단 속의 깨알같이
글자들이 촘촘한 이것은
어떤 정성스러운 이가
돋보기를 밀어 올리며
한 자 한 자 뜻을 쪼았겠지
하는 생각을 지어 가면서
나는 늙은 책들에 끌려
애처로이 신발만 자꾸 닳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