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의 시민들

칼레의 시민들
칼레의 시민들


칼레의 시민들

칼레의 용감한 시민들

칼레는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의 포위공격을 받았습니다. 1년 가까이 끈 포위 공격 끝에 칼레 시민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승리를 거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을 모두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칼레 시는 영국 왕에게 사절을 보내 여러 차례 살명을 간청하였고, 결국 영국 왕은 시민 대표 6명을 뽑아 보내면 그들을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으며, 대신 다른 시민들은 살려주겠다고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시민들은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6명의 대표를 뽑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목숨을 버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처했습니다. 그의 용기에 시장과 상인, 그의 아들까지 나섰고, 죽음을 자처한 사람은 모두 7명이 되었습니다.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을 빼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생 피에르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습니다.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는 건 어떻습니까?” 모두 이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생 피에르가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궁금했습니다. 모두 안 나와도 그는 나올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생 피에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습니다. 목숨을 건 용기가 적의 수장까지 감복시킨 것입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 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게 의뢰했는데 이 작품이 <칼레의 시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