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이형곤

빈병 이형곤
빈병 이형곤


빈병 이형곤

새벽 시장 앞

해장국집 처마에는

빈 막걸리 병 주둥이를 묶어서 만든 커다란 파꽃같이 생긴

간판 아닌 간판이 걸려있다

홍등처럼

조등처럼

흔들리는 묵시의 간판이다

바람이 불면

요상한 소리를 내는데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다 쏟아낸 뒤의 허전함에 깊은

한숨소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살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된다는 것 같기도 하다

매달려 흔들리는 빈 병,

내용물이 무엇이든 간에

담겨 있을 때 대접받는 법,

다 내려놓은 뒤의 가뿐함에

절로 터져 나오는 휘파람 소리 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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