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이형곤
새벽 시장 앞
해장국집 처마에는
빈 막걸리 병 주둥이를 묶어서 만든 커다란 파꽃같이 생긴
간판 아닌 간판이 걸려있다
홍등처럼
조등처럼
흔들리는 묵시의 간판이다
바람이 불면
요상한 소리를 내는데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다 쏟아낸 뒤의 허전함에 깊은
한숨소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살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된다는 것 같기도 하다
매달려 흔들리는 빈 병,
내용물이 무엇이든 간에
담겨 있을 때 대접받는 법,
다 내려놓은 뒤의 가뿐함에
절로 터져 나오는 휘파람 소리 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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