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나뭇잎사귀 그늘 속에 떨어져 있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저것도 꽃일까, 하이얗게 빛나던 저 과거도 꽃일까,

과거의 날들을 노트 속의 글씨처럼 마음에 담고 있는 저 시간들도 꽃일까,

과거의 시간들도 꽃처럼 묻혀질까.

그대가 아니라면

꽃이 떨어진들 누가 그대와의 기억을 찾아가겠는가

그대가 아니라면

꽃이 떨어진들 누가 그늘 속에 떨어진 꽃을 기억하겠는가

그대가 아니라면

꽃이 떨어진들 누가 과거를 생각하겠는가

그대와의 일들이 슬픈 일이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것이었든

그대가 아니라면

누가 그리워하겠는가

떨어진 꽃을 굳이 洛花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은

떨어진 꽃이라도 洛花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은….

떨어진 꽃의 계절을 떠올리기 때문일까

떨어진 꽃의 과거를 떠올리기 때문일까

시간이 가버리고, 기억도 가버리면….

꽃 진 자리의 어둠도 가버리면….

떨어진 꽃이라도 저 시간 속에 꽃이고 싶었던 것은

흔들렸던 온 계절 때문에,

온 계절에 흔들렸기 때문에….

온 계절이 흔들렸기 때문에….

-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