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 그래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무슨 말을 … Read more

가여워 마세요

가여워 마세요 가여워 마세요 날 가여워 마세요, 달이 이지러진다고, 썰물이 바다로 밀려간다고, 한 남자의 사랑이 그토록 쉬 사그라든다고, 나는 알지요. 사랑이란 바람 한 번 불면 떨어지고 마는 활짝 핀 꽃일 뿐임을. 계산 빠른 머리는 언제나 뻔히 아는 것을 가슴은 늦게야 배운다는 것, 그것만 가여워하세요. -에드나 빈센트 말레이-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태양이 아니라 물을 원해요 천국이 아니라 빛을 원해요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오세요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올라브 하우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단 한번 네 얼굴을 보기만 하면 단 한번 네 눈을 보기만 하면 내 마음은 괴로움의 흔적이 사라진다. 얼마나 즐거운 기분인가는 하느님만이 알고 있을 뿐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하얀 봄 치마 김성수

하얀 봄 치마 김성수 하얀 봄 치마 김성수 봄바람 치맛자락 붙잡고 하나씩 벗겨 땅에 떨어트리니 보일락 한 속치마 눈부시게 아름답다 여인이여~~ 부디 속치마는 벗지 말아 주오 벗겨진 치마에 향기는 남아 진하게 코끝 울리고 바람은 짙은 향기 몰아가버린다 사월의 목련 여인에 속치마는 바람이 모두 벗겨 가져갔다 부끄러워 푸른 치마 갈아입고 온몸 감추려 애쓴다

파초의 꿈 이진섭

파초의 꿈 이진섭 파초의 꿈 이진섭 그리움은 그대 눈동자에 외로움은 쓰라린 꽃잎에 내 모든 걸 털어버리고 싶었지 구름에 달간 듯 바라본들 계절의 바뀜이 없는 것을 괜스레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봄바람 속에서 깊어지는 햇살의 따사로움은 차가워진 밤이슬 잠재우며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 몰래 두고 온 사월의 내음도 장미 아래 파릇한 피어 오름도 오월의 자락 따라 꽃잎 … Read more

삶은 언제나

삶은 언제나 삶은 언제나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네가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네가 그래도 살고 싶은 염원이 된다. 삶은 언제나 허기진 미로 빛을 앗아간 사선의 그림자가 육신을 동여매듯 조여 오지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네가 있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네가 있어 정갈한 아침을 준비한다. 뜨거운 횃불, 심장에 지핀다. “ … Read more

복사꽃 양영순

복사꽃 양영순 복사꽃 양영순 산기슭 환하게 빛나며 예쁘게 핀 꽃 진실로 어여쁜 마음 모든 거짓된 것들은 사라져버리 듯 용서하며 사랑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 한다 신비로운 꽃 분홍 연분홍 다홍색 아름드리 피어있네 언제 보아도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개복숭아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이요

민들레 김미경

민들레 김미경 민들레 김미경 봄에 피어난 민들레 낮은 자세 겸손의 힘 세상이 알고 있어요 돌담 사이 피어난 꽃 널 품을 자격이 서울 땅만 해 방향감각 훔친 민들레 깃털 달고 비상합니다 길모퉁이 외로움 팔아 짠테크 희망 더듬는다 행복한 홀씨 어울려 꽃 마음 훨훨 날아라 싱싱한 봄 다듬어 꽃내음 채우며 오랜만에 웃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