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

초혼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 Read more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 나는 꿈에 지친 사람, 시냇물에 잠겨 비바람에 시달려온 대리석 트리톤*. 하루 종일 나는 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책에서 미인 그림을 발견한 듯 눈을 맘껏 즐겁게 하며 아니면 가려듣는 귀까지도 즐겁게, 그저 지혜로움에 만족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 하지만, 하지만, 이것이 내 꿈인가, … Read more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 Read more

묶인 개

묶인 개 묶인 개 내게 있어서 가을의 시작이라는 것은, 프라테로. 석양과 함께, 스산함과 함께 가련해지는 뒷마당 혹은 앞마당 정원수 수풀의 인기척 없는 곳에서, 한마음으로 오랫동안 짖어대고 있는 한 마리의 묶인 개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노랗게 물들어가는 이 무렵은, 어디에 가도 지는 해를 향해서 짖어대는 그 묶인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프라테로…… 그 짖는 소리는, … Read more

여정 김수길

여정 김수길 여정 김수길 지는 해가 그리움 되어도 잡히지 않는 세월이 가슴에 와도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흘러도 서리 내려 하얀 잡초들이 엉켜있는 길을 바짓단 적시며 나는 가야 한다 반 이상을 지나온 길이지만 하얀 조약돌이 미소 짓는 길과 작은 모래 위에 발자국 남기며 나는 가야만 한다 비록 힘든 길이라 하여도 숙명 이기에 저녁노을이 질 때 아름다운 … Read more

발라드

발라드 발라드 그이가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은 여느 때처럼 부드러웠고 길은 여느 때처럼 고요한데 그이가 가는 것을 보았다 이 불쌍한 눈이여 꽃밭을 지나가며 그이는 그 사람을 사랑하였다 신사꽃이 피었다 노래가 지나간다 꽃밭을 지나가며 그이는 그 사람을 사랑하였다 해안에서 그이는 그 사람에게 입을 맞추었다 레몬의 달이 물결 사이에서 미소 지었다 바다는 내 피로 … Read more

나의 근심이여

나의 근심이여 나의 근심이여 나의 수평선에 있는 어둠이여 나의 근심이여 나의 새로움에 붙어라 찢어라 날려버려라 불태워라 그러면 나는 잿더미 속에서 순수한 새벽을 창조할 것이다 -아도니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 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 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 Read more

그림자의 고별

그림자의 고별 그림자의 고별 사람이 잠에 빠져 시간조차 잊어버렸을 떄 그림자가 작별인사를 하러 와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천국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지옥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아이들 미래의 황금세계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벗이여, 나는 그대를 따라가기 싫다. 머무르고 싶지도 … Read more

테오에게

테오에게 테오에게 나는 누구일까 대부분의 사람들 눈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지 늘 그러했고 앞으로도 사회적 지위를 결코 가질 수 없는 간단히 말해 바닥 중의 바닥인 별 볼 일 없고 유쾌하지 않은 사람 그러나 이 모든 게 틀림없는 진실이라 해도 언젠가는 나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구나 이 보잘것없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마음 속에 품은 것들을 화가의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