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입술 김연분

붉은 입술 김연분 붉은 입술 김연분 어린 시절 어느 봄날 엄마는 입술을 바르고 지우고 얼굴을 바르고 지우고 여러 번 반복하셨습니다. 창밖 하늘을 보며 설레는 마음 물 한 잔으로 가다듬고 색 바랜 외투 하나 들고 거울 앞에서 온갖 맵시도 부렸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내가 입술을 바르고 지우고 얼굴을 바르고 지우고 따라 하는 모습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Read more

낯익은 소리 최은주

낯익은 소리 최은주 낯익은 소리 최은주 아름다운 사랑에도 함정은 있는 거야 맞아요. 맞아 낯익은 소리가 잔잔한 파동이인다 근데 난 있지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기꺼이 나는 함정에 빠질 거야. 행복하겠지? 쉽게 얻는 사랑이 아닌데 더군다나 아름답다는데 망설이고 말고 가 어딨어. 무작정 뛰어들고 보는 거야 무작정 그 품으로 뛰어들어 사랑을 하는 거지. 사랑으로 곱게 젖는 가슴만 가지고 둘이서 … Read more

아지랑이 저편에 엄기서

아지랑이 저편에 엄기서 아지랑이 저편에 엄기서 어머니 사랑이 보일까 아버지 사랑이 보일까 행복웃음 바람타고 달려오네 엄마 아빠 손잡고 하나 둘 셋 펄쩍 까르륵 좋아라 하나 둘 셋 펄쩍 까르륵 좋아라 푸르른 들판에 노랑나비 흰나비 웃음소리 날개 짓 사랑이어라 행복이어라

산사에서 김경옥

산사에서 김경옥 산사에서 김경옥 산사의 방사를 떠돌며 쇠붙이 부처님 전에 조아리고 조아리다 문득, 바람피는 부처 술마시는 부처 생색내는 부처 거짖말하는 부처 생명을 품은 부처님 전에는 고개를 치켜 세우기만 하였으니 부끄럽고 부끄럽구나 중생의 삶 속에 녹아들지 못함은 오만의 극치였으니 차라리 코 베이고 눈 머는 것이 나았으리라 허나, 어찌 흔들리지 않으랴 흔들림 속에서 그 흔들림 조차 바라보아야 … Read more

그리움이 나를 부른다 김수용

그리움이 나를 부른다 김수용 그리움이 나를 부른다 김수용 그리움이 나를 부른다 남도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에 코끝을 스치는 엄마의 분향기가 나를 부른다 금계국 곱게 핀 개울가에 여전히 남아있는 포근한 살내음 채마밭에 살포시 숨겨둔 엄마의 사랑 그리움이 나를 부른다

나이테의 어중간한 그 모습 안귀숙

나이테의 어중간한 그 모습 안귀숙 나이테의 어중간한 그 모습 안귀숙 시간이란 늘 나의 말보다 빠르게 앞서간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나이테란 이름이 그저 따라다닌다 사랑했던 사람이 그리울 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척 그대의 오늘은 힘든 척 티를 내면 안돼서 겉으로 내지 않고 속마음으로 한 겹씩 덧 입혀 나이테의 어중간 한 모습일 뿐 꿈을 꾸는 듯 지나가는 … Read more

알쏭달쏭 우리말

알쏭달쏭 우리말 알쏭달쏭 우리말 “ 얼떨결과 얼떨김 어떤 것이 맞는 말? “, 1. 얼떨결에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2. 얼떨김에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정답 : 얼떨결에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 뜻밖의 일을 갑자기 당하거나,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복잡하여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판은 얼떨결이며, 얼김이라고도 합니다.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을 뜻하는 말은 십상(十常)=십상팔구(十常八九)입니다. … Read more

면경을 긁다 한유경

면경을 긁다 한유경 면경을 긁다 한유경 오늘도 박박 문지른다 내 얼굴인가 너의 얼굴인가 더러운 얼굴 들이대고는 맑은 얼굴 내놓으라 우기네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곤 따뜻하게 보듬어 달란다 어쩌라고 내가 너이고 네가 나 인 것을 가면을 쓰고 바라 보아도 희한하게 넌 내 모습을 알아보더라 아는 척도 모르는 척도 아니하면서 쉼 없이 지껄이는 소리 마다하지 않고 면경을 닦듯 … Read more

해당화 이형곤

해당화 이형곤 해당화 이형곤 자욱한 산안개 때문인가 네비 아가씨마저 길을 잃어 꼬불꼬불 산 길을 한참을 헤맨 끝에 자동차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곳에 나타난 절 하나, 마침 스님 한분이 나온다 “스님 말씀 좀 묻겠습니다” “주지스님 속세 이름이 심정자입니까?” 약간 당황하면서도 합장하며 “네 석호 스님입니다만” 주지 석호스님은 사촌 누님의 맏딸 정자다 대학 졸업하고 무슨 학원을 … Read more

엄마와 접시꽃 주선옥

엄마와 접시꽃 주선옥 엄마와 접시꽃 주선옥 언제나 이맘때 하늘 푸른 날 다홍치마 곱게 차려입고 누군가 그리운 이 만나려나 한껏 부푼 설렘으로 오는 그녀 슬쩍 지나가는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며 뒤로 물러섰다가 또다시 성큼 뜰아래로 내려서서 눈부시게 함박웃음을 짓는다. 가녀리진 않으나 뭇 눈길을 끄는 아련한 너의 몸짓은 때로 내 어머니의 젊은 날 그 어여쁨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