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의 잔해 나영민
미적미적
돌리려는 발길이
어쩜 저리도 힘이들까
낮 더위는
머리 위를 내리쬐는
태양열에 점점 혼미해 든다
빨갛게
물들어진 고추를 따고
펑펑하게 살을 찌운 호박을 거둔다
쉼 없이
생명력을 과시하듯
줄줄이 뻗어나가는 고구마 줄기
한 올 한 올 따다가
김치라도 담그라치면
허리야 어깨야 다리야 엄살쟁이
굳이 왜 그걸
먹어야 하냐는 딸아이의 푸념
공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허전함
울 엄마가 그랬듯이
궁상이라는 오명을 쓰고
가족을 위해 옛 맛을 이어가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