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의 대상 맹태영
긴 가뭄 끝에 내린 단비는
대지의 생명을 깨우기도 하지만
가끔은 자는 감성을 흔들기도 하는데
며칠 전 잡힌 약속 장소로 가는데
지하철 창문은 내 기분과는 정반대인지
이별하는 여인처럼 주르륵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파도 소리와 빗소리가
거의 수평으로 달리는 중간쯤에
고급스러운 무광 검정 외관에 심플한 간판
아늑한 분위의 속에 활짝 웃는
싱그럽고 풋풋한 꽃들
젖은 옷의 축축한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생전 처음 듣고 생전 처음 맛보고 생전 처음 느끼는
오묘한 맛과 향이 연이어 들어오고
무식하게 음미는 뒤로 한 채 씹고 삼키고 넘겼다
좋은 시간이었다고 즐거웠다고 말만 하고
휘둥 거래 진 눈은 식탁에 남겨둔 채
아쉬운 작별을 하고
서로 좋은 추억을 오래 간직하자고
두 손 꼭 잡고 다짐을 했건만
망할 놈이 약속을 어기고
주워 담을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입을 열고 다 토해내고 말았다
원망스러운 나의 항문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