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밥그릇은 서형오
할머니와 아버지의 겸상밥이
안방 아랫목에 놓이고
푹신푹신 부푼
노오란 계란찜 종발이 있습니다
고구마를 다 캐낸 밭두둑 같은
할머니의 잇몸에서
고소하고 짭조름하게 부서지는 계란찜
아버지도 한 술 움푹 떠서
입으로 가져갑니다
우리가 둘러앉은 두리반엔 없는 계란찜
내가 살피는 낌새가 또렷할 텐데도
눈길은 서로 만나지 않고
자꾸 낮아지는 계란찜만 바라보는데
그릇 바닥이 긁히는 소리까지 가서
뿔이 돋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눈에 거슬려
동무들끼리 하듯
배불뚝이 올챙이는 어떨까
밥을 축내는 돼지는 어떨까
마음이 시소를 타고 있는데
고봉으로 퍼 담은 밥그릇이 우뚝하던 것
혀에서 이런 말이 불쑥 솟아납니다
“아버지 밥그릇은 한라산!”
하지만
섬으로 앉아서 내 말의 물결을 밀어내는 아버지
그래 이번에는
꼭대기를 더 높여서
“아버지 밥그릇은 백두산!”
해 보는데
내 말소리는
그만 식구들의 허기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고
밥그릇에 수저 부딪는 소리만
장배 끊긴 염소처럼 방 안을 돌아다닙니다
나는 계란찜 때문에
투정이 부풀어 올라
어두운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애먼 밥그릇만 한껏 달그락거리며
보리와 쌀로 지은 낮은 언덕을
벌레처럼 더디게 파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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