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말리며 박동환

빨래를 말리며 박동환
빨래를 말리며 박동환


빨래를 말리며 박동환

지나간 시간을 간직한 옷들이

휘휘 돌아가는 세탁기 안에서

어지럽게 얽히고설키듯 돌아가고 있다

모든 기억이 지워졌다는 신호를 보내듯

삐 소리가 길게 울었다

다시 삐 삐 삐 단음으로 잊힌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듯

통 속에 갇힌 옷들의 외마디 비명이

시선을 돌리게 한다

지워진 기억이 돌돌 말려서

하나하나 밖으로 기어나오고

일렬로 탁탁 털어서 줄을 세우듯

시간의 장대 위에 걸어서

아직도 미미하게 남은

마지막 기억마저 다 잊어버리려는

힘 빠진 팔과 다리를 죽 늘어뜨리고

기억을 뚝뚝 흘린다

한낮의 태양은 잊고 싶은 삶의

그늘진 그림자를 빨리 지워가고

바람도 덩달아 기억의 사선을 넘는

팔과 다리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슬픈 추억에 잠자코 숨죽인

팔과 다리를 하늘하늘 춤추게 한다

어쩌면 인생은 저 시간의 장대 위에서

춤을 추는 빨래처럼

그렇게 흔들흔들 춤추며

버리고 비우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