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나물 사발을 들고 서형오

가지나물 사발을 들고 서형오
가지나물 사발을 들고 서형오


가지나물 사발을 들고 서형오

까치 한 마리 거슴츠레한 눈으로

마을의 지붕이며 마당이며

골목길을 빗질하는 이른 아침이다

아들은 태풍에 떠내려가는 배를 따라 물에 잠기고

나이 먹은 남편도 머리를 깎고 세상의 인연을 버려서

섬처럼 외로이 사는 고모 집으로 간다

어머니가 탐나게 무친 가지나물 사발을 들고

산먼당에 있는 고모 집으로 가는 것은

간밤에 벌어진 매운 싸움질에서 지고 만

어머니의 사신으로 가는 발걸음이다

신당 기도가 끝나면

버선발이 미끄러운 마루청에 앉아

하얀 쌀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섬의 주인이

간밤에 손가락 같은 지팡이를 짚고

허위허위 언덕길을 내려와

대문 앞에서 휴우 휘파람 소리 한 번 내고는

옹기그릇에 물을 받아 놓지 않았다고

어머니를 꾸짖어 어머니 마음의 연한 살결을 쓸었고

또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고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당에 구정물을 뿌려서 그 물방울들이

발등으로 뛰어올라 고모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이다

부엌신이 노하신다고

우리는 얼씬도 못하게 하는

부엌으로 어머니가 들어갔고

건너편 솔숲에서 작은 새가 울었다

어머니는 끝이 까맣게 탄 부지깽이로

이리저리 아궁이 속을 저으면서

불기를 가라앉히고 있었을 것이다

이른 아침 어머니가 탐나게 무친

가지나물 사발을 들고

산먼당 고모 집으로 가는 것은

눈물로 패인 두 마음의 고랑길을 따라가는 발걸음이다

♨ 소식받기 ▷ Arti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