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를 지나며 이형곤

폐가를 지나며 이형곤
폐가를 지나며 이형곤


폐가를 지나며 이형곤

범어사 탐방 길 옆

지금은 사라진 청룡동

옛 마을 터

금방이라도 푹석 주저앉을 것 같은

뼈도 살도 이미 수명을 다한

임종 직전의 폐가 한 채

언제부터인가 들고양이 가족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스산하고 음침한 폐가지만

예전엔 한 가족이 슬어낸 추억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그리운 고향집 이리라

폐가,

아직도 누구를 기다리는가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두고

등 굽은 용마루엔 제멋대로 자란 와송이 뾰족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누군가 돌아와 아궁이에 군불

지펴주길 기다리는가

작은 마당엔

찬물로 막 씻은 듯한

메꽃 몇 송이

입술 파랗게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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