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수첩 김경림

겨울 수첩 김경림
겨울 수첩 김경림


겨울 수첩 김경림

그대를 꿈꾼 밤

나는 하얀 종이가 되었습니다

유자 향기가 내 안에 스며들 때

당신은 겨울 산을 적시는

눈꽃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벌판에 혼자 서 있는 전봇대

종이비행기 날리며

겨울 속을 달리는 아이들

찬 새벽 어둠을 딛고

함박눈이 퍼붓고 있습니다

창문 밖에 보이는

노랑 신호등

손을 들어도 멈추지 않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총뿐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내가

너무 오래 웃어버렸나 봐요

웃음 소리에 불씨가 날려

하얀 종이가 다 타버리고

지워지지 않는 글씨만 남았습니다

그대를 꿈꾼 밤

함박눈은 창문 밖

노랑 신호등 위에 쌓이고

나는 하얀 종이가 되었습니다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