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 이윤선
내 아버지는 농부셨지요
내 할아버지도 농부셨지요
봄에는 하얀 화선지 같으셨지요
하늘이 파랗게 되는
땅이 파랗게 되는
봄 오면 하얀 화선지 같으셨지요
빨주노초파남보 빛깔에 물드는
산처럼 들처럼 강처럼
봄에는 하야셨지요
땅에 심으면 심는 대로
뿌리는 곡식처럼 처음에는
하야셨지요
지금처럼 봄이 오기 전에 색깔에
물들라고 하는 소리
하는 짓거리 몰라도 되는
백로 같은 화선지 같은 하얀 농부셨지요
씨 뿌린 자리에 물들어 피는 꽃이셨지요
계절을 모르는 당돌한 빨강이
버선발로 반겨도
오직 흙같이 물드는 뽀얀 흰색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