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자리

저녁이 있는 자리
저녁이 있는 자리


저녁이 있는 자리

저녁이 있는 자리

짧고 소중한 봄의 저녁

이슬에 젖은 무릎을 안고 저녁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아직 짧은 봄볕의 꼬리를 아껴 두었던 나무들은 이제 여름을 인출해 넉넉하게 그늘을 깔아놓았다.

서쪽 하늘의 변화

산의 능선쯤에서 소리 없이 밀고 당기는 기운에 서쪽 하늘의 눈자위가 붉어지기 시작한다. 소멸되고 또 다시 태어나는 빛과 어둠의 지루한 릴레이가 시작된다. 그렇게 낮과 밤을 절반씩 나눠가지고 하루는 경계선을 넘어가고, 우리도 알람을 켜고 끄며 서서히 시들어간다.

시간의 흐름과 저녁의 발걸음

천년처럼 길고 하루처럼 짧은 시간을 목에 걸고 숲에서 걸어 나와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저녁의 발등은 퉁퉁 붓기 시작한다. 사람보다 훨씬 질기고 끈질긴 나무는 교대식을 마친 밤의 옷자락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하늘로 뻗친 가지 끝으로 새벽이 팔랑팔랑 피어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나무에 기록된 시간

짧아지고 길어지는 그림자를 가늠하며 세상에 풀어놓은 빛을 거두어들일 시간이 다가온다. 한 그루 나무를 붙잡고 나이테를 새기는 것은 계절을 돌아 나온 쓸쓸한 저녁의 낯빛이다.

아름드리 회화나무 그늘 아래

아름드리 회화나무 그늘에는 밤이 오기 전에 돌아가야 할 저녁이 항상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결론

저녁이 있는 자리는 삶의 경계선이다. 낮과 밤,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이 만나는 장소다. 저녁은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일깨우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상기시킨다. 저녁이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가 남기고 싶은 유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