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서형오

헌책방 서형오
헌책방 서형오


헌책방 서형오

내가 단골로 가는

헌책방 주인은

눈매가 선해

선관(仙官)같은 양반

그가 거느리는 식솔들은

한 권에 단돈 천 원

옹기가 볼록하게 된장을 기르듯

시간이 뱃속에서 키워 온 책들이었네

색은 바래고

거죽은 손때가 묻어

옛 신선의 물건 같은데

나는 오래 묵은 맛에 끌려

신발이 자꾸 닳았네

빨아 갠 속옷들같이

속장이 정갈한 이것은

어떤 강퍅한 이가

때 타는 일을 근심하며

한 장 한 장 등을 밀었겠지

깻단 속의 깨알같이

글자들이 촘촘한 이것은

어떤 정성스러운 이가

돋보기를 밀어 올리며

한 자 한 자 뜻을 쪼았겠지

하는 생각을 지어 가면서

나는 늙은 책들에 끌려

애처로이 신발만 자꾸 닳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