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의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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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의 시민들

칼레의 시민상: 영웅적 희생과 용기의 상징

개요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에 자리한 칼레의 시민상은 희생, 용기, 애국심의 상징입니다. 이 조각품은 1347년 백년전쟁 중 영국군의 포위 공격으로 칼레가 함락된 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칼레 시민 6명의 목숨을 요구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칼레의 포위 공격과 영국의 승리

1347년, 영국군은 1년 동안 칼레를 포위했습니다. 도시는 영국의 공격에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식량이 떨어지자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승리를 거두자, 칼레 시민을 모두 처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영국의 조건과 시민들의 희생

칼레 시민들의 간청에 굴복한 에드워드 3세는 시민들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조건을 내놓았습니다. 칼레 시민 6명이 다른 시민을 대신해 처형되면, 나머지 시민은 살려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은 6명이 자신들을 대신해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누구도 자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칼레의 가장 부유한 시민인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청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시장, 상인, 그의 아들 등 6명이 더 자원했습니다.

생 피에르의 제의와 죽음

생 피에르는 장터에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6명을 처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6명이 모였지만 생 피에르는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는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에드워드 3세의 자비와 로댕의 조각품

시민 6명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에 굴복하여 그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이들의 용기가 적의 수장까지 감동시킨 것입니다.

550년 후인 1895년, 칼레 시는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게 칼레의 시민 6명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는 조각품을 의뢰했습니다. 로댕은 시민들이 목줄을 두른 채 영국군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묘사한 <칼레의 시민상>을 제작했습니다.

결론

칼레의 시민상은 영웅적 희생, 용기, 애국심의 상징입니다. 이 조각품은 칼레 시민들의 희생을 기리고, 전쟁의 잔인함과 용기의 힘을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