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달라 힘들어하는 그대를 위해
지금 사귀는 분과 종교가 달라서 힘드신 분, 명절 때마다 종교가 달라 가족 안에서 어색하신 분, 혼례나 장례 같은 애경사 때 종교로 인해 가족끼리 다투시는 분, 의외로 주변에 보면 많이 계십니다.
피를 나눈 부모, 자식, 형제 사이에도 정말로 죽고 못 사는 애인이나 부부지간에서도 어쩌다 각각 다른 종교를 믿게 되어서 마음의 평화와 사랑을 가져다줘야 할 종교가 오히려 심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일까요?
일단 이것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종교 자체가 아니고 내 종교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그 마음이 서운한 것이라고요. 가족 다수의 종교가 소수의 종교를 대하는 무의식적인 차별과 개종을 암암리에 종용하는 그 폭력성이 싫은 것이라고요.
즉, 내가 어색하게 느끼고 불편한 것은 상대방의 종교 자체가 아닌 내 것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그 사람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다름’을 대하는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종교를 믿어도 어떤 분은 관용하고 존중하는데 또 어떤 분은 편협하고 내 것만 옳다고 말하니까요.
이런 경우를 극복해나가는 좋은 방법은 사실 상대방의 종교를 내 종교 알아가듯 진실한 마음으로 공부해보는 것입니다. 성경책이나 부처님 경전, 신부님, 목사님, 스님들의 에세이나 교리를 담은 책들을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분명 감동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라? 다른 줄 알았는데 내 종교랑 비슷한 가르침도 많고 좋네.” 이렇게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 종교인들 가운데 법정 스님, 강원용 목사님,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의 삶과 사상을 알아가다 보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편협한 종교 형태가 전부가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진심으로 상대방 종교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가슴 깊이 느끼고 나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도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더 상대의 종교가 얼마나 훌륭한지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종교에 대해 편협한 태도로 나오면 이번엔 당당히 말하십시오. 당신 종교의 큰 어른들은 그렇게 행동하시지 않으셨다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강원용 목사님이 얼마나 서로 존경하셨고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이 글을 통해 서로 얼마나 교감하셨는지 달라이 라마 존자와 토마스 머튼 수사가 얼마나 절친이셨는지 알고 계시냐고.
종교의 본질을 보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다 통합니다. 영성이 깊지 않은, 말만 배운 초보 신앙인들만 모양과 형식이 다인 줄 알고 세뇌되어 자기 식만 옳다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제, 내 종교 남의 종교 따지는 일에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깊은 이해와 실천을 통해, 종교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 없이 모두 편안해지길 기원합니다.
-‘혜민스님의 따뜻한 응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