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화 이태기
그 나무는 여러 해만에
첫 꽃이 하얗게 피었다
꽃은 사랑의 서약 써놓고 노랑벌을
불렀지만 초례청 예법 모르는 철부지 벌은
밀어는 읽어주지 않고 빙빙
노닥거리기만 했다
꽃은 밤낮 순백의
향내 뿜으며 우주에 한번 랑데부를 원했지만
화심(花心)을 맡을 줄
모르는 벌은 원죄의 비늘에 씌어
순결의 언어에
접근하지 못하고 꽃잎 흔들며
미끄럼만 계속 탔다
시간은 점점 말라가고 다른 연착륙이 일어나
그 자리엔 성난 열매가 맺혔다
노랑벌은 뒤늦게 깨닫고 말했다
꽃술을 읽어주는 것이
천직인 줄 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