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꽃 김순옥
빈 벌판 헤매 보았는지
절고 다니는 마음
위탁해 보고 싶었는지
청보라 회장저고리
서슴없이
기품으로 풀어내던 붓끝으로
적막한 연못속
어머니의 시간을 되감고
나를 응시하고 있던 꽃
언제나
꽃잎속에 지긋하게 누르던
위로 안되는 냉정한 말씀도
잘 알고 있던 꽃
못견디는 것의 시간은
소멸하는 시간의 일이라고
소 귀에 지나가는 말씀들이
세상을 돌고돌아
건조한 내 두 손안에 어느덧
존재의 아픈 뿌리를 잡고
어루만지고 있을 때
빈 벌판 유일한 독경으로
지긋이 누르는 붓끝으로
{냇가에 외다리 꼬고 졸고있는
저 왜가리도
흐르는 물결에 외로운
몸과 마음 실어놓고
시간을 벌고 있더라
지긋이 시간을 벌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