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거문고 유종호
남자가 여행용 가방을 들자
거문고 줄 고르듯
키 큰 여자가 먼저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다가왔다
그것도 모르고 남자는
발뒤꿈치를 조금 들고 걸어갔다
부전나비를 본 큰 하늘나리는
꽃대를 비튼 채 꽃받침을 움츠렸다
나비는 그것도 모르고 주름을 펴고
날개를 끝까지 들어올렸다
거문고의 힘줄이 부풀어 올라
붉은 철쭉 꽃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거문고를 탄주하려던 나비는
급히 줄을 늦추었다
바람이 꽃잎 두 장을 떨구었고
꽃잎은 담장 위에서 포개졌다
여느 때 같았으면 동백꽃잎이 뚝뚝 떨어졌을
거문고에서 깊은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거문고 줄은 처음부터 고를 필요가 없었다
그냥 두어도 저절로 울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