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지우며 김경림
수고했던 달력아
1월부터 12월까지
빠짐없이 할일을 적어 놓고
하나씩 지워간다
설날도 지우고 결혼식 날
생일과 병원가는 날도 지워가면서
하루에 삶이 보람됐다 지우고
대출 연장 날짜 보며
마음 졸였던 은행 시간표도 지운다
하나씩 지우다 보면
열아홉의 나도 서른 아홉의 기쁨과 마흔아홉의 생사고비를 넘긴시간이 저절로 지워진다
지우고 싶지 않은 날도 함께 지워지고 나면
텅빈 대합실에 앉아 있는것 같다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에
새로운 달력을 반기듯
새 삶을 위해 노트 한 권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