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 꽃에 숨겨진 사랑 이진섭
상현의 달 아래 꽃 피는 봄이 되니
기억 속의 내가 지워지고
하현의 달 위에 꽃 지는 겨울 되니
추억 속의 네가 여미운다.
부러질 듯 가는 실 바늘
콕 찌르고 탈탈 털어내어
꽃 주머니 텅 비운 채로,
헤진 무명실 촘촘히 꿰어가며
한 땀 두 땀 구부러진 버선코 잇기에,
구슬땀 흠뻑 젖어 달려오던
아련의 그림자조차 몰래 잡아보련만
날선 칼날로 베어진 조각은
뼛속 가득 선명히 주름 잡혔다.
한낱 초췌한 가치로 보일까!
향기 가득 희미한 들풀의 구애는
날 애타게 붙잡으며 놓아주지 않아도
찬 서릿발 붉은 치맛자락만 까맣게 속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