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이종희
가고 싶은 길 위에서는
마른 바람을 만났고
가고 싶지 않은 길 위에서는
풀꽃 같은 사랑을 했고
가야 하는 길 위에서는
뜻밖의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갈 수밖에 없는 길 위에서는
그 너른 바다를 만났다.
한 치 앞을
안개가 가린다 해도
벼랑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길은
길 위에서 길을 이루어
푸른 길에 가 닿게도 했고
길을 잃고 길을 헤매도
나는 내 길 위에 있었다.
가고 싶은 길
가고 싶지 않은 길
가야 하는 길
갈 수밖에 없는 길
우리는 늘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만
어느 길을 걸었어도
지금 내가 그리운 것에
그늘을 드리우거나
무디게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