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속엔 가을이 없다 김기철
봄이 오면
겨울을 까맣게 잊고
봄비 촐촐히 내리는 개울가
발아래 움트는 새싹들과 눈을 맞추다가
어느새 봄이 가기도 전에
징검다리 건너
소낙비 내리는 들길을 내달리는
여름을 그리다가
산 너머 겨울을 상상했다
싸락눈도 함박눈도 그저 좋아서
눈 쌓인 들판을 마냥 걸어가는 아이를
계절을 건너뛴 겨울 풍경 속에 버려두고
나는,
가을 숲속으로 황급히 돌아와
가을,
그 성대한 초연이 펼치질 무대 앞에서
여름에 해야 할 일을 까맣게 잊은 채
그저 막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